<시> 시험에 시달리는 그대에게 - 이외수
2013. 8. 14. 02:52ㆍ감상
날다타조 중에서
시험은
자유를 속박하는 족쇄
희망을 목 조르는 사슬.
시험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덜커덩,
언제나 집채만한 돌덩어리가
그대 가슴알 짓누른다.
그대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커다란 가마솥에 불안의 여물죽을 끓인다.
불안의 여물죽만이 그대의 일용할 양식이다.
하지만 안타깝다.
그대의 두뇌는
같은 시기에 출시된 다른 제품들에 비해
품질이나 성능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산통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행운조차도 그대와의 인연이 멀어서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들면
낯익은 문제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생소한 문제들만 득시글거리고 있다.
빌어먹을,
요행을 바라고 무작정 찍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그대를 비애롭게 만든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지,
찍어도 어쩌면 그토록 절묘하게
오답만 골라서 찍었을까.
그대의 싱그러워야 할 젊음은 결국
시골집 처마 밑에 걸려 있는 시래기처럼
초라하게 시들어 가야만 한단 말인가.
밤마다
절망이 검은 복면을 쓰고 잠입해서
그대의 가슴에 무지막지한 대못들 박는다.
단지 안정된 직장이나 얻어
가까스로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은 얼마나 소박한 희망이냐.
하지만 그토록 소박한 희망 하나에도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그대는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어떤 의식 구도를 가진 작자가
시험으로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을
최초로 창안해 내었을까.
품질과 성능이 우수한 두뇌를 가진 인간들은
천사일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대는 분명히 악마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험을 악마가 창안하지 않았다면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라는 문장이 명기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총성없는 전쟁이다.
천사느 어떤 전쟁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에게는
시험이 없는 세상이 그대로 천국이다.
그대여.
눈물겹다.
어제는 과연 몇 시간을 잤느냐.
타고난 능력으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무거운 등짐처럼 짊어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대.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고
성큼성큼 어둠이 걸어오고
펄럭이는 달력이 떨어지고
어물어물 한 해가 기울어진다.
가세는 날이 갈수록 기울어지고
부모님들의 주름살만 깊어가는데
그대는 속수무책으로 기대의 프라이팬에
불안과 초조만 볶아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대여.
시험이 그대의 인생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는 견해가 과연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아니다.
시험은 절대적으로 두놔가 우수한 사람이 유리하다.
글나 복잡다단한 이 사회를
보다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능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공하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대가 시험이 그토록 지겹고
시험에 그토록 자신라 없다면
굳이 그대의 인생 전체를 시험에 의탁할 필요는 없다.
시험은 전적으로 두뇌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는 두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있고 몸통에는 사대육신이 있다.
그 중에서 어느 한 쪽 기능이라도 뛰어나다면
최소한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대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방면에서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옷만 잘 만들어도 출세가 보장되고
집만 잘 만들어도 출세가 보장된다.
곤충만 잘 길러도 성공이 보장되고
들꽃만 잘 길러도 성공이 보장된다.
그대가 진실로 노력해서
하나의 남다른 세계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글도 그곳으로 타인의 삶을윤택하게 만들고
세상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만 있다면
그대는 훌륭한 인격체로 부각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대여.
현실의 최면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둘러보라.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시험을 못 치는 사람이 반드시 불행한 인생을 사는가.
그렇자 않다.
자기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시험만 보면 죽을 쑤었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인간들은 참으로 기이한 동물이다.
토끼와 거북이에게 경주를 시키고
빠른 토끼를 방심과 나태로 낮잠에 취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느린 거북이를
성실과 인내로 토끼보다 먼저 골인 지점에 도달하는 승리자로 만든다.
하지만 왜 토끼의 홈그라운드인 육지에서
한 번만 경주릉 시키고 마는가.
거북이의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서 경주를 시켰다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제비는 하늘을 잘 날고
두더지는 땅을 잘 파고
잉어는 헤엄을 잘 치고
다람쥐는 나무를 잘 탄다.
각기 다른 성정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들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같은 방법 같은 규칙으로 우수성을 측정하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시험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순을 간직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모든 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물론 모든 인생에도 정답이 없다.
시험에서 오답을 적는 사람들이
인생에서도 오답을 적는다고 생각한다면
시험과 인생이 한꺼번에 웃고 나자빠질 노릇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맞추지 못한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 훨씬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대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인생을 살도록 하라.
그대가 제비라면 부지런히 하늘을 날도록 하고
그대가 두더지라면 부지런히 땅을 파도록 하고
그대가 다람쥐라면 부지런히 나무를 타도록 하고
그대가 잉어라면 부지런히 헤엄을 치도록 하라.
그대가 땅을 파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제비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하늘응 날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두더지로 살아가거나
헤엄을 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다람쥐로 살아가거나
또는
나무를 타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잉어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조차도 그대를 도와 줄 방법이 난감하리라.
그대여,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단 하나의 시험 문제만 풀면
누구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롣 배려하셨다.
하나님이 출제하신 시험 문제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였다.
인간이 출제하는 잡다한 시험 문제들은
아무리 정답을 많이 맞추어도
백 프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출제하신 단 하나의 시험 문제는
장답을 맞추면 백 프로 행복이 보장된다.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대여,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오로지 그대의 의지에 달려있다.
나는
그대가 고작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서
밤을 자새는 삶을 선택하지 않기를 빈다.
그대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인생을 불태우는 삶을 선택하기를 빈다.
그대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험 문제와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인들은 그것이 보여주는 결과에 따라
그대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어떤 시험 믄제에도 기죽지 말라.
그대는 지금 하나님이 출제하신 시험 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진실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안지를 컨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대에게만 은밀하게 힌트를 주겟다.
누구든 머리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고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절로 정답을 알게 되리니,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가 있으므로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그대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희망을 목 조르는 사슬.
시험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덜커덩,
언제나 집채만한 돌덩어리가
그대 가슴알 짓누른다.
그대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커다란 가마솥에 불안의 여물죽을 끓인다.
불안의 여물죽만이 그대의 일용할 양식이다.
하지만 안타깝다.
그대의 두뇌는
같은 시기에 출시된 다른 제품들에 비해
품질이나 성능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산통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행운조차도 그대와의 인연이 멀어서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들면
낯익은 문제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생소한 문제들만 득시글거리고 있다.
빌어먹을,
요행을 바라고 무작정 찍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그대를 비애롭게 만든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지,
찍어도 어쩌면 그토록 절묘하게
오답만 골라서 찍었을까.
그대의 싱그러워야 할 젊음은 결국
시골집 처마 밑에 걸려 있는 시래기처럼
초라하게 시들어 가야만 한단 말인가.
밤마다
절망이 검은 복면을 쓰고 잠입해서
그대의 가슴에 무지막지한 대못들 박는다.
가까스로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은 얼마나 소박한 희망이냐.
하지만 그토록 소박한 희망 하나에도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그대는 소름이 끼친다.
시험으로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을
최초로 창안해 내었을까.
품질과 성능이 우수한 두뇌를 가진 인간들은
천사일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대는 분명히 악마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험을 악마가 창안하지 않았다면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라는 문장이 명기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총성없는 전쟁이다.
천사느 어떤 전쟁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에게는
시험이 없는 세상이 그대로 천국이다.
눈물겹다.
어제는 과연 몇 시간을 잤느냐.
타고난 능력으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무거운 등짐처럼 짊어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대.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고
성큼성큼 어둠이 걸어오고
펄럭이는 달력이 떨어지고
어물어물 한 해가 기울어진다.
가세는 날이 갈수록 기울어지고
부모님들의 주름살만 깊어가는데
그대는 속수무책으로 기대의 프라이팬에
불안과 초조만 볶아대고 있는 실정이다.
시험이 그대의 인생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는 견해가 과연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아니다.
시험은 절대적으로 두놔가 우수한 사람이 유리하다.
글나 복잡다단한 이 사회를
보다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능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공하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대가 시험이 그토록 지겹고
시험에 그토록 자신라 없다면
굳이 그대의 인생 전체를 시험에 의탁할 필요는 없다.
시험은 전적으로 두뇌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는 두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있고 몸통에는 사대육신이 있다.
그 중에서 어느 한 쪽 기능이라도 뛰어나다면
최소한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대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방면에서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옷만 잘 만들어도 출세가 보장되고
집만 잘 만들어도 출세가 보장된다.
곤충만 잘 길러도 성공이 보장되고
들꽃만 잘 길러도 성공이 보장된다.
그대가 진실로 노력해서
하나의 남다른 세계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글도 그곳으로 타인의 삶을윤택하게 만들고
세상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만 있다면
그대는 훌륭한 인격체로 부각될 수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최면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둘러보라.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시험을 못 치는 사람이 반드시 불행한 인생을 사는가.
그렇자 않다.
자기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시험만 보면 죽을 쑤었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인간들은 참으로 기이한 동물이다.
토끼와 거북이에게 경주를 시키고
빠른 토끼를 방심과 나태로 낮잠에 취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느린 거북이를
성실과 인내로 토끼보다 먼저 골인 지점에 도달하는 승리자로 만든다.
하지만 왜 토끼의 홈그라운드인 육지에서
한 번만 경주릉 시키고 마는가.
거북이의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서 경주를 시켰다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두더지는 땅을 잘 파고
잉어는 헤엄을 잘 치고
다람쥐는 나무를 잘 탄다.
각기 다른 성정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들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같은 방법 같은 규칙으로 우수성을 측정하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시험은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순을 간직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모든 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물론 모든 인생에도 정답이 없다.
시험에서 오답을 적는 사람들이
인생에서도 오답을 적는다고 생각한다면
시험과 인생이 한꺼번에 웃고 나자빠질 노릇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맞추지 못한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 훨씬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대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인생을 살도록 하라.
그대가 제비라면 부지런히 하늘을 날도록 하고
그대가 두더지라면 부지런히 땅을 파도록 하고
그대가 다람쥐라면 부지런히 나무를 타도록 하고
그대가 잉어라면 부지런히 헤엄을 치도록 하라.
그대가 땅을 파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제비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하늘응 날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두더지로 살아가거나
헤엄을 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다람쥐로 살아가거나
또는
나무를 타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잉어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조차도 그대를 도와 줄 방법이 난감하리라.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단 하나의 시험 문제만 풀면
누구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롣 배려하셨다.
하나님이 출제하신 시험 문제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였다.
인간이 출제하는 잡다한 시험 문제들은
아무리 정답을 많이 맞추어도
백 프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출제하신 단 하나의 시험 문제는
장답을 맞추면 백 프로 행복이 보장된다.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나누어 줄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오로지 그대의 의지에 달려있다.
나는
그대가 고작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서
밤을 자새는 삶을 선택하지 않기를 빈다.
그대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인생을 불태우는 삶을 선택하기를 빈다.
그대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험 문제와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인들은 그것이 보여주는 결과에 따라
그대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어떤 시험 믄제에도 기죽지 말라.
그대는 지금 하나님이 출제하신 시험 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진실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안지를 컨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대에게만 은밀하게 힌트를 주겟다.
누구든 머리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고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절로 정답을 알게 되리니,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가 있으므로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그대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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